삶과 운
우리나라에서 즐겨쓰는 말 중에 운칠기삼(運七技三)이라는 말이 있다. 어떤 일이나 사람이 잘 되려면 운이 작용이 70%, 기술(사람이 할 수 있는 정도)가 30%라는 말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.
어느 한 사람의 성공도 그러한 듯 하다. 어떤 사람은 별 능력이 있어보이지 않지만 결과가 좋은 사람이 있고, 또 다른 사람은 정말 능력도 출중하고 노력도 하지만 결과가 좋지않은 경우도 있다. 이럴 때 사람들은 어떻게든 잘 된, 또는 잘 못된 이유에 대해 찾으려 한다. 물론 찾으면 그 이유는 찾아진다. 잘 하다가 뭔가 상황에 맞지 않는 판단을 했든, 어떤식으로든 필요한 부분에 딱 하나의 못을 정확히 박았든 말이다.
이렇게 어떤 일을 할 때, 같은 노력으로도 누군가는 잘 되고, 누군가는 아니라면, 사람들은 운이 좋고 나쁨을 얘기한다. 하지만 이 운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거나 어떻게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‘사주’, ‘점성술’ 등의 이름으로 사람의 미래를 점치려는 시도가 많다. 그리고 누군가는 이 것을 신의 뜻으로 돌리기도 한다.
물론 어떤 일의 성공을 운만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. 분명 성공의 확률을 높이기 위한 기(技)의 영역은 존재하고 본인의 노력을 다 했을 때 마지막으로 운의 영역에 결과를 맡겨야한다.
과학과 운
이 책의 저자는 ‘양자물리학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. 양자물리학은 어찌 보면 현대 물리의 최첨단을 달리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.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양자의 관찰 결과는 확률에 의존하고 있다. 그리고 카오스 이론은 아주 작은 초기 조건의 차이가 엄청나게 큰 결과의 차이를 가져온다고 말한다. 예전 사람들은 ‘라플라스의 악마’처럼 모든 것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무엇인가 있지 않을까 했지만, 과학이 발전될수록 점점 모르는 것이 있다는 어찌보면 역설적인 결론에 다다른다.
운은 인간의 영역 바깥에 있나
현재로서는 그렇다. 하지만 이 책에서도 적고있고, 앞서에서 언급한 것 처럼 일이 성사될 확률을 높이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몫이다. 책의 말미에 진화의 예를 들며 이야기한 것 처럼 우연으로 발생한 어느 일이 생명력을 갖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 선택의 영역이다. 또한 과학이 발전하다보면 운 자체를 이해할 날도 오지 않을까.